붓끝에서 피어나는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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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붓끝에서 피어나는 품격
선비의 지혜, 절제와 여백의 미학 서예
  • 입력 : 2026. 08.14(금) 16:30
  • 지림서예원 이점숙 원장
-지림서예원 이점숙원장-
옛 선비들에게 서예는 단순히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을 다스리고 인격을 수양하는 하나의 길이었다.
"심정즉필정(心正則筆正)"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바르면 붓끝도 바르게 나아간다는 뜻이다. 당나라의 명필 유공권이 황제에게 올린 이 한마디는 글씨가 곧 그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임을 일깨워 준다. 붓을 잡기 전에 먼저 호흡을 가다듬고, 먹을 갈며 마음의 잡념을 씻어내는 과정 자체가 이미 수양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절제와 여백의 미학
옛 선비들은 서예를 통해 절제를 배웠다. 한 획을 잘못 그으면 다시 지울 수 없는 것이 붓글씨다. 그렇기에 한 글자, 한 획을 쓸 때마다 신중함과 집중이 요구된다. 서예는 '여백'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다. 글씨로 가득 채우지 않고 적절한 공간을 남겨두는 것, 그것이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낸다.

▶인격 수양의 도구
퇴계 이황과 추사 김정희 같은 조선의 선비들은 서예를 통해 학문과 인격을 함께 닦았다. 추사체로 널리 알려진 김정희는 평생 벼루 열 개를 밑창 내고 붓 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질 만큼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글씨가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까닭은 단지 기교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치열한 자기 성찰과 인고의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 있기 때문이다.
선비들은 글씨를 쓰는 행위를 '입신(立身)'의 근본으로 여겼다.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정갈히 하며, 뜻을 세우는 모든 과정이 붓을 잡는 자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본 것이다.

▶디지털 시대, 다시 붓을 드는 이유
키보드와 터치스크린이 손 글씨를 대체한 지 오래인 지금, 역설적으로 서예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되살아나고 있다. 먹을 갈고 종이를 펴고 한 획 한 획 정성을 다해 글씨를 쓰는 행위는 언뜻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느림'과 '정성' 속에 서예가 우리 삶에 건네는 진정한 가치가 숨어 있다. 빠르게 흘러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먹의 향을 맡으며 한 글자씩 정성껏 써 내려가는 시간은 현대인에게 보기 드문 명상의 순간을 선사한다.

▶서예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예술이다.
완성된 작품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그 글씨를 쓰기까지 들인 정성과 집중의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가치다. 옛 선비들이 서예를 통해 몸과 마음을 함께 닦았듯 오늘 우리도 붓 한 자루로 삶의 품격을 되찾을 수 있다.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묵묵히 쌓아가는 정성 속에서, 서예는 우리의 삶을 더욱 깊고 가치가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지림서예원 이점숙 원장 wnews136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