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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09시경에 도착하여 소작인 항쟁기념탑( 송기숙 작가 비문 작성)을 방문하여 단체묵념하였으며, 다음으로 서태석, 서동오, 김종남과 문씨 지주측과의 최초 충돌장소이며, (문태현 송덕비가 있고) 암태도 소작인회 간부 석방을 위한 목포 아사투쟁 출발지이며, 소작쟁의의 발원이 되었던 마명방조제가 있는 암태도 남강항을 방문하였고, 그리고 지주 문재철 가옥이 있는 수곡리를 찾았고, 민중 미술화가인 서용선 화백이 그린 소작쟁의 미술관을 관람하고, 당시 서당이었고 소작인회 사무실이 있었던 기동리 서동오 가옥을 방문하였고, 마지막으로 기동리에 있는 서태석 생가 및 가묘지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조선 후기 신안군 우이도에 살면서 일대에서 홍어를 거래한 문순득 동상 앞에서 문순득의 표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문순득의 표류기는 자산어보를 썼던 정약전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문순득은 흑산도에서 홍어를 사기 위해 태사도에 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면서 오끼나와(유규), 필리핀(여송), 마카오(오문)을 걸쳐 청나라에 도착하여 조선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동행했던 이재근 신안군 학예연구사의 유창한 역사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들을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신안군 암태도는 일제 강점기에 소작쟁의 일어난 곳으로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크다. 암태도 소작쟁의는 1923년 8월부터 1924년 8월까지 1년여간 암태도 소작인들이 자발적으로 일으켰던 소작 농민항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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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태도의 소작인들은 암태 소작인회를 조직하여 약 1년간에 걸쳐 암태도의 식민성 지주 문재철과 이를 비호하는 일제에 대항해 소작쟁의를 벌었다. 1920년대에는 일제의 저미가 정책으로 지주의 수익이 감소하자 지주측에서는 소작료 증수로써 손실분을 보충하려 하였다. 그중에서도 암태도의 경우가 더욱 심해 7할 내지 8할의 소작료를 징수하였다. 이에 암태도 소작인들은 1923년 8월 추수기를 앞두고, 서태석의 주도로 암태 소작인회를 조직하고 소작료를 4할로 인하할 것을 요구하였다.
소작쟁의가 발생하자 일본 경찰들은 지주의 편을 들고, 4.10일 목포경찰서와 검사국에서 현장조사, 노동대회 참석 중이던 서태석을 검속, 서창석 박필선 등 소작회 간부 13명을 모두 구속하였다. 이에 대항한 암태도 주민들의 단결력은 대단했다. 6.3경에 면민 대회를 열고 이에 따라 6월 4.5일 암태 청년회 대표 박복영과 부인회 대표 고백화를 등을 비롯한 암태 소작회 회원 400여 명이 목포로 나가 석방 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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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 다시 목포로 나가 단식농성을 하기로 결의하고 8일 오후 600백 여명이 열 척의 배를 타고 목포로 건너왔다. 이들은 목포로 도착한 즉시 목포지청 검사국으로 달려가서 13명을 석방하지 않으면 모두 그곳에서 죽겠다고 하면서 아사동맹에 돌입하였다. 이들 가운데는 혈서까지 쓴 사람도 있었으며 일행 중에는 노인과 여자들이 2백명 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암태도 소작쟁의가 전국적인 지지를 받자 목포경찰서의 유화책 추진으로 지주와 소작인 대표가 약정서를 체결하였다. 암태도 소작쟁의는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농민운동이다. 독립운동가 박복영. 여장부 고백화. 사회주의 사상가 서태서의 등이 주도하여 암태도 주민들과 똘똘 뭉쳐 지주와 그를 비호 하는 일제에 맞서 싸워 쟁취하였다.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 서태석이다. 서태석은 일제 감점기에 암태도 소작쟁의를 승리로 이끈 농민운동의 지도자이자, 항일운동가였다. 서태석은 7년간 암태도 면장을 지내며 신망받던 인물로 소작인회를 조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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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독립운동을 이어가던 수차례의 수감생활과 고문으로 조현병에 걸려 1943년에 결국 압해도의 어느 논둑에서 벼포기를 움켜쥐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고향 마을조차도 그를 외면 할수 밖에 없었던 일제하의 참혹한 민족현실이 서글퍼지는 순간이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 말은 서태석과 그의 가족사를 통해 실감 할 수 있었다. 그의 며느리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주역이였던 박기옥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두 인물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친손녀 (서익철의 딸)가 미국에 살아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광주학생항일운동 발단이 되었던 박기옥이라는 사실이었다. 미국에 있는 친손녀가 할아버지의 고향 암태도를 방문하고, 할머니의 흔적이 있는 광주학생항일운동 기념관을 방문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kedu8114@naver.com
2026.03.06 13: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