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공 석탄 이신의 선생 충절과 학덕 추모… 유애서원 춘향사제 엄숙 봉행
검색 입력폼
문화
문정공 석탄 이신의 선생 충절과 학덕 추모… 유애서원 춘향사제 엄숙 봉행
광주유림·전의이씨 후손 200여 명 참례… 충의와 절의의 정신 되새겨
  • 입력 : 2026. 04.24(금) 16:14
  • 신재원 편집국장
병오년 춘향사제 헌관 및 제관 기념사진<유애서원 사무국>
[대한교육방송]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아로 460 흑석동에 자리한 유애서원(원장 유만권)에서 지난 4월 7일 문정공 석탄 이신의(1551~1627) 선생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는 춘향사제가 광주광역시와 지방의 유림, 전의이씨 후손 등 200여 명이 참례한 가운데 엄숙하게 봉행됐다.
초헌관이 신위전에 향과 술을 올리고 있다<유애서원 사무국>

유애서원은 광주목사를 지낸 이신의 선생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인조반정 이후 낙남한 선생의 후손들이 이 일대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감이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감낭징이'라 불리다가 이후 '시리'라는 지명으로 이어졌다.

1632년 이신의 선생이 선조의 어필 서문이 붙여진 8폭 병풍을 하사받자, 호남유림이 예부의 허가를 얻어 1754년 유애사를 지어 이를 보관하였으며, 이것이 오늘날 유애서원의 뿌리가 됐다. 현재 광주유림회의 주관으로 매년 봄 이곳에서 춘향사제를 지내며 선생의 뜻을 기리고 있다.

석탄 이신의 선생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충의와 절의로 이름 높은 선비였다. 임진왜란 당시 경기도 고양에서 의병 300여 명을 이끌고 왜군을 물리치는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광해군 때에는 죽음을 무릅쓰고 인목대비의 유폐를 반대하는 항소를 올렸다가 변방의 회령으로 유배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유배 시절에는 거문고로 시간을 보냈다고 전해지며, 당시 사용한 거문고가 유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선생은 광주목사와 형조참판을 역임하며 여러 고을의 목민관으로서 애민정신을 몸소 실천했고, 사후에는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 저서로는 『석탄집(石灘集)』 3권이 전해지고 있다.

이날 춘향사제 제관은 초헌관 정남호, 아헌관 성원제, 종헌관 정영배가 헌관을 맡았으며, 진설 이민호, 집례 이락구, 축 민헌기, 봉향 배현수, 봉로 길광언, 사준 김진희, 봉작 임귀남, 전작 신재원, 찬인 김기중 등이 각 소임을 맡아 제례를 봉행했다.
병오년 춘향사제 참석 헌관 및 제관 역할 분정<유애서원 사무국>

서원 임원은 원장 유만권을 중심으로 유림과 전의이씨 문중 관계자들이 함께 행사를 이끌었다.

참례자들은 선생이 평생 지켜온 충의와 애민의 정신을 되새기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제례를 마쳤다. 유애서원(전의이씨문중 제36대 회장 이한붕) 은 "석탄 선생의 절의 정신과 애민의 뜻을 오늘날에도 계승해 나가는 것이 이 자리의 의미"라고 밝혔다.
신재원 편집국장 kedu81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