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칼럼] 비전을 이루는 사람들 대한교육방송 kedu8114@naver.com |
| 2025년 12월 20일(토) 1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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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피에가 워낙 유명한 발명가라서 이 소문은 미국에까지 퍼졌는데 몽골피에를 아는 한 과학자가 벤자민 프랭클린에게 이 소식을 전하며 혹평을 했습니다.
“그 커다란 풍선을 하늘로 올리는데 성공을 했다고 칩시다. 도대체 그걸 해서 뭐에 쓰겠단 말입니까?”
과학자의 혹평에 프랭클린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남의 꿈을 함부로 비웃어서는 안 됩니다. 갓난아기를 보고 장차 뭐가 될지 아는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결국 몽골피에 형제는 열기구에 사람을 태우는데 성공했고, 이 열기구는 세계유명 관광지를 비롯해 전쟁에서 사용되기도 하며 발명된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어느 아파치족의 족장이 연로해서 족장직을 더 이상 수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후계자를 뽑아야 했습니다. 족장은 아파치족의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체력, 지혜,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젊은 족장을 원했습니다. 마침내 어려운 관문을 거쳐 3명의 젊은이가 뽑혔습니다. 노 족장은 그들에게 말합니다.
"아파치의 자랑스러운 용사들이여! 저기 눈 덮인 로키산맥의 최고봉이 보이는가? 이제 아무런 장비 없이 저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그곳의 증표를 가지고 이 자리에 일찍 도착하는 사람에게 나의 추장 직을 물려주겠노라."
세 젊은이는 악전고투 끝에, 정상에 올라가 저마다 꼭대기에 올라갔다는 증거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산꼭대기에서만 피는 꽃 한 송이를 가져온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한 용사는 산꼭대기 맨 윗부분에 있는 붉은빛의 돌 조각을 증거물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용사는 빈 손이었습니다. 추장은 노여운 얼굴로 세 번째 용사를 바라보며, 왜 빈손으로 돌아왔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족장님, 저도 분명 저 산꼭대기에 올라갔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 산 너머에 있는 비옥한 땅과 넓은 강물과 수많은 버팔로 떼를 보았습니다. 저는 누가 우리 족장이 되든지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파치족은 저 산을 넘어가야 합니다."
결말이 어떻게 났을 것 같습니까? 어떤 청년이 족장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산너머 산을 보고 꿈너머 꿈을 보았던 청년이었습니다.
스위스의 장 앙리 뒤낭 (Jean-Henry Dunant)은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스위스의 유명한 은행장이었습니다. 그의 꿈은 그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함께 경제 협력의 기회를 마련하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꿈이 이루어질 기회가 왔습니다.
1859년 6월 스위스의 경제 사절로 프랑스에 간 그에게 황제를 만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나폴레옹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위해 전쟁터에 가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뒤낭은 실망하지 않고 꿈을 이루고자 위험한 이탈리아 북부의 솔페리노 전쟁터로 달려갔습니다.
프랑스 및 사르디니아 연합군 그리고 오스트리아군 사이의 참혹한 전투가 막 끝난 카스틸료네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피투성이가 되어 뒹굴고 있는 수많은 시체를 보게 되었고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 생명의 허무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뒤낭은 더 이상 나폴레옹을 만날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그곳에 머물면서 오래 동안 의사를 도와 부상병을 돕고 시체들을 치우는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뒤낭은 나폴레옹을 만나겠다는 꿈을 버리고 새로운 꿈 하나를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평화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전쟁은 이 세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나는 어떤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이런 생각은 잠시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1859년 적극적으로 이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국제적십자 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제1회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고 이것은 조국 스위스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한 조직이 된 것입니다. 적십자의 기(旗)는 색상과 순서 배치만 다를 뿐 스위스와 국가와 똑같은 깃발입니다.
뒤낭은 그가 꿈에 그리던 한가지의 소원을 잃은 대신 더 크고 보람찬 꿈을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꿈은 소중하지만 더 큰 꿈을 위해 기와의 꿈을 버릴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됩니다.
대한교육방송 kedu8114@naver.com
